험난했던 로마 캔들 (Loma Candle) 제작기 ep.01

2020년 01월 08일

01. 섹스토이 디자이너에 지원하다.

“넌 요즘 뭐 하고 지내?”

Loma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생기곤 하면, 나는 매번 “Loma는 Love myself의 줄임말이고, 우리는 모든 사람이 솔직하게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시작하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성인용품, 섹스토이라는 단어가 주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거부감을 가진 단어였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지금도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에는 누가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난 요즘 섹스토이 만들면서 지내.” -다른 제품 디자이너 친구들이 ‘난 요즘 00 전자 공청기 프로젝트 진행 중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라고 선뜻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에 이렇게 매진하고 있는 이유를 말하라면 “언젠가는 꼭 사랑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어요. 사랑의 욕망이 충족되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사라질 수 있다면 인류는 더 진보하고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이 한마디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처음 면접을 보던 날 대표님이 내게 말했던 이야기다. 물론 요즘도 꾸준히 이야기하곤 한다.)

그 당시 면접에서 나눴던, 제품 디자인은 얼마나 했고 제품은 어떤 걸 만들어봤으며 공모전은 어떻냐, 기계 설계에 대한 경험과 사전 지식은 어떠한가 등 흔히들 제품 디자이너가 면접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주고받게 되는 (수많은) 재미없는 이야기들은 크게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단지 어린애처럼 눈동자를 반짝이며 자신의 원대한 꿈을 늘어놓던 한 사람에 매료되었다랄까. 좀 더 미화하자면 ‘아 저 사람이랑은 꼭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라는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분이 대표님. 가끔 사람 홀리는 재주가 있는 것 같기도.)



02. 프로젝트의 시작

그렇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그 당시의 우리 팀은 단 2명이었고(팀 이름도 없었다. 브랜드 이름도 없었다. 내 기억으론 슬랙 채널도 그냥 #sextoy 였었지.) 말이 2명이지, 대표님은 메인 비즈니스(섹스토이 프로젝트는 신사업이다.)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기에 실질적인 주 업무는 모두 내 몫이었는데 당장에 섹스토이 산업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면 역시 오나홀이었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입이라 웬만한 오나홀들은 다 써봤다고 자부했었고 또 내가 만든다면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렇게 가장 잘 알고, 가장 빨리, 가장 잘할 수 있는 오나홀을 첫 제품으로 만들자고 결정하게 되었다.

제품도 정해졌겠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브랜드 네임을 정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우리는

  1. Loma = Love myself
  2. Sello = Self love
  3. XXXY = 성염색체 XX + XY

라는 3가지의 선택안을 가지고 있었다.

키프리스를 통한 기존 상표권을 검색했을때 3가지 모두 등록 가능한 이름이었기에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Loma로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SEO를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한 정말 소중한 브랜드 네임이다.)

(초기에 만든 우리의 로고)

그렇게 로고까지 정해지자 다음 단계는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원래 가장 자신있는 일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였으니까. 시장 조사를 진행하고 고객 니즈를 바탕으로 디자인 컨펌을 받고, 생산 공장을 찾아 미팅을 하고 계약을 진행하기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려서 오히려 걱정이었던 것 같기도. 초기 우리의 제품은 로마홀(오나홀과 발음이 비슷했다.)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03. 그래, 어쩐지 너무 쉽더라.

시장조사와 고객 니즈를 바탕으로 기획을 진행했을 때

  1. 선정적인 패키지로 현혹하지만 막상 제품의 경험은 그저 그런 일본 오나홀
  2. 누구를 본떴다. 누구의 그곳이다. 라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판매중인 오나홀
  3. 고객의 경험은 중요하지 않은채 그저 공급자적 시각으로 설계된 오나홀 패턴

등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 제품 만큼은 꼭 지켜야할 가치를 정하고 그것만을 바라보고 개발하자는 지향점을 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가장 큰 지향점은

  1. 최고의 자극
  2. 최소한의 퀄리티
  3. 사용자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 설계

이렇게 3가지로 설정했다. (솔직히 기획할 때는 크게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당시만 해도 초기였기에 오나홀, 섹스토이 생산 공장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무했고, 그 전까지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제품 제작을 의뢰해왔던 기존 금형 공장 대표님들은 섹스토이라는 제품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난색부터 표하기 일쑤였다. 이는 결국 섹스토이 생산을 위해서는 업체 컨택부터 처음부터 진행해야 함을 의미했다. 다행히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몇 군데의 섹스토이 생산 업체와 컨택을 할 수 있었고 그 중 가장 이야기가 잘 됐던 모 업체를 통해서 제작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나홀은 바디를 위한 슬러시 혹은 사출 금형 뿐만 아니라 수제작으로 패턴봉을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금형 제작 과정이 그러하듯 설계 파일을 넘기고 약 한 달간의 제작 기간은 가뜩이나 속도에 집착하던 나에겐 너무나도 오랜 인고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금형 제작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에는 테스트에 필요한 유저를 모으고 오나홀 내부 패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첫 T1 시사출을 진행했을 때 받아본 샘플은 아직도 그 감정이 생생하다. 모든 제품 디자이너가 그러하듯 몇 개의 제품을 만들었던 간에 자기가 디자인한 제품이 첫 생산되어 손에 안겼을 때의 그 기분은 정말 갓 태어난 내 자식을 보는 기분이다.(물론 아직 미혼이지만) 여유롭게 감격스러운 감정을 다 느끼기도 전에 유저 테스트라는 관문을 거쳐야만 했는데 그 당시의 샘플의 경우 지금의 로마 캔들보다 많이 작은 형태였다. 그 때문에 1,2차 테스트에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자극이 부족하다.” “너무 인위적이다.” “사고 싶지 않다.” 등의 혹평을 쏟아 냈다. 아! 좋았던 피드백도 기억이 난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건 좋네요….”

(지금 보면 너무나도 귀여웠던 1,2차 샘플 제품)

Editor : Product Designer Grey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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